sungyup's.

금빛 땅의 유산 : 포용의 어머니
Zaw Win Pe·Kyaw Lin·Aung Zaw·Htoo Aung Kyaw·Chan Aye·Htein Lin·Khin Maung Yins·Thar Gyi·Aung Myo Oo·Aung Myint·Aye Nyein Myint

금빛 땅의 유산 : 포용의 어머니

미얀마 현대미술 작가들이 보여주는 미얀마의 아름다움과 상처, 그리고 치유

Mar 1, 2025

Exhibition

들어가며

K & L Museum에서 25년 2월 ~ 3월에 걸쳐 진행하는 미얀마 현대미술 특별전, 금빛 땅의 유산 : 포용의 어머니에 다녀왔습니다. 24년 광주비엔날레 미얀마 파빌리온에서 같은 이름으로 열린 전시와 다소 구성이 바뀐 전시라고 하는데, 미얀마의 여러 현대 작가분들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는 기획은 같습니다.

k&l museum
K & L 뮤지엄에서 진행된 미얀마 현대미술 특별전, 금빛 땅의 유산 : 포용의 어머니

바다 건너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유학이 보편화된 2020년대에, 같은 나라 출신이라는 느슨한 기준으로 묶는 기획이 일관성 있는 주제를 전달할 수 있을지, 감상 전에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예술 작품이란 시대와 환경을 예술가라는 프리즘에 비춰서 나오는 걸까요, 이번 전시를 통해 오직 미얀마 예술가들이기에 가능했을 작품들을 접하며 미얀마의 자연 환경과 문화 종교적 배경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현재 미얀마 사회가 겪고 있는 아픔과 그것을 치유하는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낯선 나라, 미얀마에 공감하다

echoes of strife 1
Echoes of Strife 연작 중, Htein Lin

시작부터 압도적인 붉은 색채 속에 원시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들이 가득 찬 Echoes of Strife 연작이 펼쳐집니다. Htein Lin님의 작품으로, 그 아래는 같은 작가님이 낡은 신발과 조롱박으로 만든 거미들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주류 민족인 버마 족을 포함해 고유 문화를 가지고 있는 아주 많은 소수 민족들로 구성된 나라로, 군부 독재, 쿠데타, 소수 민족에 대한 탄압 등 복잡한 현대 사회의 문제들로 오랜 세월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Echoes of Strife 연작은 2018년 로힝야 마을 공격2021년 미얀마 쿠데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Htein Lin님의 설명에 따르면 거미는 샨 지역 전설에서 승리와 인내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쿠데타 이후 젊은이들이 시위를 하다가 탄압을 받고 남겨진 신발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 낡은 신발로 거미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얀마의 동시대 젊은 청년들과 사회가 겪는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이들의 고통을 희망으로 치유하려는 작품으로 시작하는 전시회였기에 보다 미얀마라는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낯선 감정 대신 공감의 문을 열고 다가갈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echoes of strife 4
2층에 가기 전 1.5층에서 이어지는 Echoes of Strife 4와 거미들, Htein Lin

다름, 그리고 포용

1층에는 그 외에도 Zaw Win Pe님의 풍경화와 Htoo Aung Kyaw님의 부처가 들어간 추상, Chan Aye님의 조각 작품도 있었습니다. 미얀마의 아름다운 자연, 종교 문화적 배경을 느껴볼 수 있는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작품들이었습니다.

zaw win pe
아름다운 미얀마의 자연과 역사적 정취가 담긴 건축물들을 볼 수 있었던 Zaw Win Pe님의 풍경화

2층에 가기 전 1.5층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앞에서 말했던 Htein Lin님의 거대한 Echoes of Strife 연작 중 4번째 작품입니다. 이어지는 것은 Aung Zaw님과 Khin Maung Yin님의 추상들로, 미국 추상표현주의 및 후기 모더니즘의 영향이 보이지만 분명한 개성이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2층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Aung Myint님의 Mother and Child 연작입니다.

mother and child
미얀마 문자가 생각나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조형의 어머니와 아이.

미얀마어를 할 줄 모르고 문자 체계가 '어떤 느낌으로 생겼는지'에 대한 인식만 있는 제겐 미얀마 예술가이기에 가능한 아름다운 작품으로 보였습니다. 참고로 "어머니와 아이"는 미얀마어로 쓰면 အမေနှင့် ကလေး라고 하네요. 어머니와 아이 연작 앞에 있는 Aung Myo Oo님의 미얀마 가정 집의 미니어처와 함께 보니 미얀마 시골 가정의 따스함과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어떨지 눈앞에 그려지는 기분이었습니다.

Aung Myint님의 다른 추상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검은색, 붉은색, 초록색을 주로 써서 그린 그의 추상들은 미얀마 국기 색(노란색, 붉은색, 초록색이 들어가지만)을 연상시키기도 했구요, 민족과 민족이 섞여 지내지 못하는 아픔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green and red
서로 섞이지 못하고 있는 민족들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Aung Myint님의 추상

Kyaw Lin님의 풍경화도 인상 깊었습니다. 흔히 쓰지 않는 보라색의 풍경화로 Zaw Win Pe님의 풍경화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는데, 아마 미얀마의 자연이 그만큼 다양하고 강렬한 햇빛 아래 다양한 인상이 보여지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kyaw lin
미얀마의 풍경이지만 또 다른 아름다움이 가능함을 보여준 Kyaw Lin님의 풍경화

나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미얀마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인문적 배경은 물론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제까지도요. 태국, 베트남만 해도 우리에겐 매우 익숙하지만 미얀마는 자국의 아픈 현대 역사가 오랜 시간 이어지며 찾아가기도, 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많았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과 같은 기회를 통해 미얀마의 자연 환경과 문화적 배경, 그리고 동시대 미얀마인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되어 좋았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아픈 상처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젊은이들,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의 노력이 밝은 결실을 맺기를 바라봅니다.